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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4 종영   https://tv.jtbc.co.kr/gagu

개구쟁이 칼럼

'가족 연기해보기' by 허지웅

2012-05-21 PM 8:56:16 조회 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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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가장 가깝고도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우리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이를테면 우리는 우리 부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요? 먹고 살기 위해 고생했다는 ? 나를 사랑한다는 ? 가족이라는 굴레로 나를 짜증나게 한다는 ? 그런 말고. 그가, 혹은 그녀가 젊은 시절 어땠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고 어느 누구와 사랑을 나누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사실 나는 아무 것도 아는 없습니다. 그런 있을 거라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냥 아버지고 어머니일 뿐이었습니다. 어떻게든 , 라는 존재를 경유해서야 손에 잡히는. 돌이켜보면,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저’ ‘이라고 발음되는 음절이 가리키는 어떤 집합일 뿐이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안의 코끼리만큼 적절한 비유도 없을 겁니다. 안에 작은 코끼리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해요. 안에서 코끼리는 자랍니다. 그리고 급기야 집에 끼일 정도로 몸집이 커져버립니다. 이때가 되면 코끼리는 문제가 됩니다. 벽이 막혀서 화장실도 제대로 가겠고, 식사를 하려면 현관 밖으로 나가서 창문으로 다시 들어와야 합니다. 가운데에 코끼리가 버티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코끼리가 문제라는 알면서도 이걸 해결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생각해봅시다, 자체를 부수어 버리지 않는 이상 코끼리를 빼낼 방법이 없잖아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생각해보면, 귀찮고, 불가능해보입니다. 아예 생각 자체가 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개 그냥 잊어 버리는 쪽을 택합니다. 그냥 거기 그대로 두고 같이 사는 편해요. 지나갑니다. 모른 딴청을 피웁니다. 코끼리에 대해 말하는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어 있고요. 그런데 코끼리를 치우면 훨씬 좋지 않을까, 라고 누가 말할 같으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 소리칩니다. 어차피 알고 있거든? 혼자 똑똑한 하지 . 그렇게, 코끼리는 집의 일부가 되고야 맙니다.

 

우리는 모두 가족이라는 이름의 코끼리를 기르고 있습니다. 공공연한 폭력의 최전선은 전쟁터가 아니라 가정입니다. 남이 하면 저런 미친놈이 있어, 삿대질 것도 엄마에게 형제에게 자식에게 남김없이 쏟아냅니다. 문제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마나 잠깐 후회하고 금세 망각하고 다시 되풀이합니다. 나와 나의 행동을 분리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한 저열함입니다. 사실 이걸 저열함이라고 불러야 조차 모르겠군요. 수십 년을 함께한 가족 관계 안에서 자신과 부모와 형제자매를 개별적인 인격체로 객관화시킬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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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가족 문제, 하면 소통의 부재 뿌리로 꼽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소통은 사라졌을까요. 앞서 언급했다시피, 대개의 사람들에게 가족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구구절절 말을 하지 않아도 적당히 맥락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런 것이 바로가족이라며 낭만적으로 타자화하기도 하지요. 그러다 보니 결국 대화와 이해는 망실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건 모두 가족이 된다는 , 가족을 만든다는 , 이런 문제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볼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되면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러다 보면 어찌어찌 살아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덜컥 가족이 만들어집니다. 많은 이들에게 가족이란 그저 책임의 문제일 뿐입니다. 엉겹결에 가족이 되고, 책임을 지기 위해 그것을 지속합니다. 와중에 가족 구성원 안에서 가장 많은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지고 있는 책임에 대해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존경심을 가져 주길 원하지요. 그게 좌절될 소외된 꼰대 가부장이 탄생하는 겁니다. 그럼 거기서 폭력이든 단절이든 해체든 다른 가족 문제가 양산되지요. 지긋지긋해.

 

생각을 달리 해봅시다.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자신들이 생산해낸 작은 체계 안에서 각자 어떤 역할을 해야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나 성찰, 긴장감을 갖게 된다면 뭐가 달라질까요. 막무가내로 사람은 아내고 자식이니까, 부모고 형제니까, 라고 퉁치는 아니라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 어머니는 어머니의 역할, 자식은 자식의 역할에 대해 서로 충분히 합의하는 겁니다.

그에 관한 다소 극단적인 예가 있습니다. 소노 시온의 영화 <노리코의 식탁> 보면 재미있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렌탈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사업인데요. 전화를 해서 아버지 시간이요, 시간이요, 이렇게 신청하면 사무실에서 아버지 역할, 역할 해줄 사람을 고객에게 보내줍니다. 그렇게 신청한 시간 동안 가상의 아버지, 연기를 해줍니다. 원하면 시간 연장도 되고요.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대부분 기러기 아빠, 홀로 버려진 가부장, 독거 노인들입니다. 가족을 연기해주는 그들 앞에서 고객들은 대개 내가 잘못했다며 엉엉 울어버립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노리코라는 이름의 가출 청소년인데요. 가출한 딸을 찾아 다니던 아버지는 그녀가 바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결국 사무실에 전화해 딸을 렌탈하게 됩니다. 진짜 딸을 역할로 렌탈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버지는 뭐가 문제였는지 조금씩 깨닫게 되지요.

 

소노 시온이 <노리코의 식탁>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흡사, 집을 때려 부숴서라도 지금 당장 코끼리를 빼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만큼 가족의 문제와 그로부터 출발하는 개인의 문제가 너무 심각해져 버렸다는 위기의식이기도 하고요. 가족 문제가 어렵고 위협적인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문제의식을 휘발시킬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 가족이라는 단어는 뜨겁고 애잔한 것이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가족이니까, 라는 말을 이상 듣고 싶지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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