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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기
윤상현
러블리 코스메틱 마케팅본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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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함의 끝판왕. 자칭 방어적 비관주의자.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세상에 덤볐다가 무참히 쓰러지는 사람들을 무수히 봐왔다. 현재 안온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다 내가 적당히 몸을 사렸기 때문이다. 인내는 언제나 최악의 사태를 막아내지 않던가? 길고 긴 인생 결국 지는 게 이기는 거더라. 그래서,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져주고 만다.
소심한 성격에 연애 한번 제대로 못하고 모태솔로의 길을 걷다가 하룻밤 실수로 덜컥 우주가 생기고 결혼까지 이르렀다. 적극적인 구애를 거절하지 못해 함께 밤을 보냈고, 상처 받을까 봐 보듬었고, 아이가 생겼으니까 책임 졌다는 걸 아내는 진즉에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성실했지만 애정 없는 결혼에 지쳐갈 때 즈음 정기가 친구에게 거액의 돈을 떼먹힌 것을 핑계로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와 도장을 찍었다.
미용실 미용사가 머리에 땜빵을 만들어도, 시장상인이 다 시들어 빠진 야채, 과일을 강매해도, 위층에서 시도 때도 없이 쿵쾅거려도, 아래층에서 담배연기가 올라와도, 택배가 잘못 배달되어도, 나의 택배를 옆집이 꿀꺽해도,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거절 한번 못한다.
이런 생보살, 걸어 다니는 유니세프, 파더 테레사 같은 남자.
손해감수하고, 참고, 넘어가면 대충 평온한 인생이었는데, 이놈의 회사생활은 그걸로 해결이 안 된다. 후배에게 승진을 추월 당한 것은 그나마 가벼운 몸 풀기 수준.
황금화학에 ODM(제조업자 개발생산 방식)납품 계약을 따내기 위한 최종 PT날 시제품을 깨먹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 회사에서 쫓겨나고 만다.
정기가 다시없을 실수를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PT당일 이사를 온 앞집 탓이었다. 바빠 죽겠는 출근길에 이삿짐으로 입구를 막아버려 결국 시제 품을 깨먹게 만들었던 것. 뿐인가? 우주의 자전거를 훔쳐간 것도 모자라 소방법 위반 운운하는 딱지를 붙여놓다니!
생애 처음으로 용기 내어 쳐들어간 앞집 902호에서 튀어나온 주인은 오 맙소사! 다름 아닌 황금화학의 욱다정 팀장!
예정된 계약을 뒤집고, 읍소하는 정기에게 무참한 치욕감을 맛 보였던 바로 그 욱다정이 하필이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이사를 온 것이다.
같은 아파트 주민이 되어 수시로 얼굴을 마주쳐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심장마비 걸릴 지경인데, 우여곡절 끝에 겨우 복귀한 러블리 코스메틱에 정기의 상사로 욱다정이 오게 되면서 평온하던 그의 인생 앞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들이닥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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