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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세상 성동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제44부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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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포.판. 법원 수뇌부가 가장 무서워 한다는 출세를 포기한 판사, 그러나 집안에서는 아내와 딸 둘 밑으로 가장 낮은 서열을 차지하고 있는 서글픈 가장.
고시촌 낭인 생활을 오래 하다가 겨우 합격해서 동기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대학도 법원에서 보기 드문 듣보잡 학교. 법원의 주류 엘리트 코스를 밟기에는 출발부터 글러먹은 비주류. 본인도 그걸 안다. 법정에서도 거침 없는 언행으로 ‘막말 판사’ 사건을 여러 번 일으켰다.
고시도 늦고 결혼도 늦고 모든 게 늦은 인생이지만 그래서 다른 판사들과 달리 세상의 무게를 안다. 처자식 건사해야 하는 가장의 책임감을 알고, 사람이 먼저 먹고 살아야 하기에 밥숟가락의 무게가 세상 무엇보다 무거움도 안다.
그래서일까. 젠장 판사질을 20년도 넘게 했는데 왜 갈수록 더 자신이 없어지는 걸까. 그런데 햇병아리 배석 판사놈들은 세상 다 아는 것처럼 날뛰고... 공진단으로 버티며 인상 쓰기 바빴는데, 지내다보니 이 녀석들 쓸만하다. 세상은 발전하나보다. 내가 못 보던 것을 이 젊은 녀석들이 본다. 내가 판사를 너무 오래한 건가. 과거는 미래에게 양보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