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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사라 이다희 선호그룹 원에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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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똑똑한 여자를 독한 여자로 키운다.
한번 안 건 절대 잊지 않는다. 똑똑하다 못해 맹랑하기까지 했던 아이는 첫 받아쓰기 백 점을 맞던 순간을 기억한다. 저를 향해 쏟아지던 칭찬과 박수, 그리고 선망의 시선. 그 말할 수 없는 짜릿함. 남들이 못하는 걸 하고 남들에게 없는 걸 갖게 되면 이 칭찬과 박수가, 이 선망의 시선이 끊이지 않을 것임을 사라는 그 순간 본능적으로 알았다. 사라는 절대 그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사라를 세상은 어느 샌가 독한 년이라 부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하늘에 원을 그려봐. 그 원을 뺀 만큼 다 내 거야.
이 바닥 인생 뻑하면 인수합병이라지만 그 인수합병에 제 인생까지 말려들 필요는 없었다. 아버지의 재혼은 살면서 한 번도 꿇려본 적이 없던 사라가 처음으로 꿇어본 경험이었다. 데릴사위쯤으로 새 장가에 드는 아버지의 혼수품으로 딸려 들어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가족들 사이에서 식구 노릇하기 어언 십 년. 아버지는 한 이불 덮는 아내라도 있지 그 십 년의 세월 내내 저는 그 집안 주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조각배에 불과했다. 그래도 십 년 내내 죽어라 노를 저었더니 항구 한 자리쯤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눈에 들어 저가항공사인 원에어의 대표가 됐다. 남들은 젊은 나이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그건 정말 사라를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그 하늘은 사라가 안주하기에는 너무 작고 좁은 하늘이었다. 이왕 가질 하늘이라면 티로드항공쯤은 되어야 했다. 제가 못 가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재가 만만치 않았다. 공식 후계자이자 남이나 다름없는 오빠. 일단 그 오빠를 쓰러뜨려야 할 텐데 자기 스스로 넘어지지 않는 한 넘어뜨리기가 쉽지 않았다. 잠깐, 스스로 넘어진다고?사랑? 그딴 거 돈으로 사겠어.
곁에 사람도 잘 안 두는 인간이 항공사 모델인 한세계를 싸고돌 때 알아봤어야 했다. 사랑은 성공의 걸림돌일 뿐. 도재는 그 걸림돌을 스스로 제 앞에 놓고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라는 그 앞에 커다란 수렁을 파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일단 수렁을 파기 위해선 한세계, 그 여자의 비밀이 필요했다.
한세계의 뒤를 캐봤더니 은호가 딸려 나왔다. 경계하는 눈초리의 이 남자는 어디 세탁실에 들어가 표백이라도 당한 것처럼 속이 새하얬다. 꼭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같았다. 눈으로는 볼 수 있지만 만질 수는 없는 구름. 티끌 하나 없는 은호 앞에서 자신의 티끌들은 모여 태산이 되었다. 처음으로 그게 부끄러웠다.
제가 쥔 어떤 모범답안과 해설지에도 이 남자의 이름은 없는데. 이 남자의 이름은 천국 가는 명부에나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와 나는 죽어 가는 길도 달랐다. 이토록 다른 이 남자를 나는 사랑하게 된 걸까? 하지만 얘는 내가 아니라 신을 사랑하는데. 포기하지 않고 일단 기도로 신과 협상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