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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씨 손석구 외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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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견디는데 술만큼 쉬운 방법이 또 있을까?
마시다 보면 취하고, 취하다 보면 밤이고... 그렇게 하루가 간다.
이 생활도 괜찮구나.
우울한 기분은 잠깐. 우울하면 또 마시면 된다.
동네 어른이 잠깐 도와달래서 도와줬더니, 그 뒤로 틈틈이 부른다.
돈도 주고 밥도 주면서. 하루에 몇 시간 아니지만 일하면서 술 마시니
그렇게 쓰레기 같지만은 않은 느낌.
어느날 갑자기 이 마을에 들어와 조용히 술만 마시는 나에게,
사람들은 섣불리 말을 걸거나 자기들의 세계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뭔가 쓴맛을 보고 쉬는 중이겠거니 생각하는 듯.
사람들과 말없이 지낸다는 게 이렇게 편한 거였다니.
그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어떤 인간으로, 어떤 위치에 놓아야 될지,
얼마나 피곤하게 계산해가며 살았었는지 새삼 느낀다.
그렇게 지내는데 어르신의 딸이 찾아왔다.
이 생활에 푹 젖어있는 나를 다시 정신 차리게 해서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 싶지 않다.
남녀관계에서 또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인간을 연기해야 하나. 그럴 의지도 기력도 없다.
이 여자, 태생적으로 주목 받을 수 없는 무채색 느낌이 나는 게,
사회생활 힘들었겠구나, 그래서 용트림 한 번 해봤구나 싶다.
어랏, 이 여자 은근 꼴통이네 이거. 물러날 기색이 없다.
그래, 잠깐인데 뭐 어떠랴.
불안하다.
그녀와 행복할수록 불안하다.